1. 먼저 키르기스스탄 민족 분규상황을 간략히 정리하면?
국내언론에는 민족분규가 초창가에 악화된 것으로 보도되었는데,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던 남부의 오쉬주, 잘랄아바드주, 바트켄주의 상황은 지역에 따라 약간 차이를 보이면서 사태가 최초 발발한 오쉬지역에서는 사태발발 이후 자발적인 치안유지 활동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반면,
전 대통령 바키예프 대통령의 고향이자 지지세력의 중심지인 잘랄아바드주에서는 키르기스인들의 우즈벡인 거주지역에 대한 적대행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공권력 중심 치안부재의 불안정한 상황이라 치안상태의 개선에는 오쉬보다는 시일이 소요되었다.
이로 인해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우즈벡계가 역사적인 모국이면서도 인접국가인 우즈베키스탄으로 피난하고 있는 상황이 발생하였는데, 우즈베키스탄은 사태초기 무한정 난민들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하며, 일시적으로 키르기스쪽 국경을 폐쇄하고 키르기스 우즈벡인 협회의 지원요청에도 노코멘트하는 등...민족분규가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으며, 이후 카리모프 대통령은 민족분규가 아니라 특정집단의 도발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발언을 통해 키르기스스탄 국내 정치적인 사안임을 분명히 하였다.
2. 6월 키르기스 유혈사태와 분규의 직접적인 원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대부분의 국내언론에서는 오쉬지역에서 키르기스계와 우즈베크계 청년들간의 사소한 갈등이 민족분규로 촉발되었다고 초기보도하였고, 우리 정부도 이에 따라 대처하였는데, 이는 적절한 분석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견해라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4월 바키예프 대통령의 퇴진을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키르기스스탄 남부지역의 키르기스계 지방세력들이 현 키르기스 임시정부의 남부지역에 대한 통제력 회복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갈등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 측면이 있으며, 또 다른 한 측면은 지난 4월 북부지역 중심 정치세력들이 주도한 바키예프 전 대통령의 퇴진과정에서 남부지역 우즈벡계가 임시정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지속적인 갈등 양상을 보여왔는데, 이러한 남부지역 갈등양상은 오는 6월 27일 임시정부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을 지니는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 이후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는 임시정부의 낙관적이고 수동적인 대응도 사태확산 원인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 페르가나 지역은 분규가 빈발하게 발생하는 지역으로 소련시기에도 민족갈등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지역 분쟁사를 간락히 보면?
이 지역은 중앙아시아에서 지리적으로 흔히 페르가나 계곡이라 불리는 곳으로, 특히 오쉬는 과거 실크로드가 통과하던 문명교차로 이면서 교역의 중심지였던 곳이었다. 이로 인해 이들 지역은 나름대로 일종의 지역정체성이 분명하게 확립되어 있었고, 19세기중반 제정러시아에 정복당하기전까지는 코칸드 칸국을 형성하여 안정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어서 기득권 의식 및 지역적인 자부심이 분명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소련편입과정에서도 1920년대 중반까지 저항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소련 중앙정부는 이 지역이 지니는 경제 및 정치적인 중요성을 고려하여 통치가 수월하도록 하기 위해 기존공동체나 자연환경적인 경계에 대한 고려 없이 오늘날의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으로 인위적으로 분할하는 국경선을 설정함에 따라 같은 동네가 서로 다른 나라에 속하고, 전통적인 공동체가 붕괴되는 현상이 발생하였는데, 이들 국가들간에 자유로운 왕래가 보장되어 있었던 소련시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소련말기의 이른바 자민족 중심주의적인 정서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갈등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소련으로부터 이들 국가들이 독립한 이후 이들 국가들간의 자유로운 통행과 교류가 제약당하기 시작하면서, 이들 국가들의 국경지역은 늘 민족분규 내지는 해당국가들의 중앙정권에 대한 저항을 촉발할 수 있는 정서들이 잠재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4.이번 사태의 원인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20년이 된 키르기스스탄의 정치권력 변화와도 관련이 있지 않나? 지난 20년간 키르기스스탄 체제의 변화와 관련해서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사태가 처음 발생한 오쉬지역은 20년전인 1990년 6월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간의 국경분쟁이 원인이 되어 100여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민족분규를 경험한 곳이구요, 오쉬와 인접한 잘랄아바드, 그리고 국경 건너편 우즈베키스탄 도시인 안디잔 등은 민주화 시위 또는 민족분규 등으로 대규모 희생을 치렀던 곳이다.
1990년대초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독립하던 시기에 소련공산당 지도자 출신이 아닌 인물이 정치지도자로 선출된 유일한 나라가 키르기스스탄으로, 이때 선출된 인물이 1993년 집권 이후 계속되는 권력기반 강화 시도로 국내정치 불안과 경제실정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2005년 4월 민주화 시위에 의해 축출된 아카예프 대통령이었는데, 아카예프 대통령은 키르기스의 소수민족 집단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우즈벡계 집단 역시 아카예프 대통령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의 아카예프 대통령을 축출시키는데 앞장섰던 키르기스탄 남부 출신의 바키예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지역에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우즈벡계에 대해 아카예프 대통령과는 달리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키르기즈-우즈벡 국경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대응함에 따라 우즈베키스탄 왕래가 이전보다 불편해진 우즈벡계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아울러 올해 4월 바키예프 대통령의 퇴진국면에서 남부지역의 우즈벡계가 바키예프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하는 임시정부 세력에 지지를 표명하게 되면서부터 바키예프 대통령을 여전히 지지하는 남부지역의 키르기스계와 임시정부를 지지하는 우즈벡계의 갈등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4월말 오쉬에서는 한국으로부터 운송장비를 수입하는 현지업체가 오쉬역에서 화물하역 및 통관과정에서 이른바 일종의 통과세를 징수하려던 키르기스계 토착세력과 대립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업체의 사장이 우즈벡계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지역 키르기스인들 사이에서는 우즈벡인들이 중앙정부의 지원하에 경제적인 이권을 다 차지한다는 불만이 고조되어 지난 5월 이후로 키르기스계와 우즈벡계는 긴장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5. 국제사회가 이번 사태를 주시하는 이유가 상당히 복합적이라고 하는데요, 관련국들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특히 임시정부에서 러시아에 개입을 요청했다가 부정적인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키르기스 국내정치적인 문제임을 언급하며 불간섭을 천명했구요, 수도인 비쉬켁 인근의 러시아군 기지 보호를 명분으로 공수부대를 파견하였는데, 이는 사태 악화시 바로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을 유지하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다가 상황에 따라 선택적이고 제한적으로 개입하여 키르기스 임시정부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자연스레 확대하면서도 이러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이의제기도 최소화하겠다는 전략적인 접근으로 판단된다.
-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키르기스스탄에서 발생한 민족 분규 사태는 역내의 비상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이번 사태와 관련해, 옛 소련 연방국가들의 안보모임인 집단안보조약기구의 긴급 정상회의가 소집될 수도 있음을 밝혔다고 하는데요. 좀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9.11 이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의 진출을 적극 확대하고 있는 미국 역시 이번 사태를 관망만 할수 없을텐데요, 미국의 대응은 어떻게 예상되는지?
미국은 현재 섣불리 개입을 선언할 수도 없고 또 수수방관만 할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로 현재 미국의 대 아프간 작전을 위한 중심보급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키르기스스탄 수도인 비쉬켁 인근 마나스 공군기지 재사용 협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며, 협상 당사자인 키르기스스탄 임시정부나 임시정부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러시아측의 반응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먼저 지원의사를 밝히기 보다는 메드베데프의 언급 이후 인도적인 물자지원 정도의 수준으로 언급하였다.
6. 앞으로 중앙아시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어떠한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을지?
이미 지난 4월 발생한 키르기스스탄의 민주화시위는 인접한 중앙아시아의 두 자원강국인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정치체제 안정과 민주적인 체제 이행이라는 문제를 다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번 사태는 중앙아시아의 역내 분쟁에 대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공동대처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 이다. 중앙아시아 역외국가들의 역내 문제 개입에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의 기존 입장을 고려해볼 때 일단은 키르기스 국내정치세력들간의 타협을 통해 사태가 해결되도록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으며,
사태가 내부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는 키르기스스탄 경제가 직간접적으로 가장 연관이 많이 되어 있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및 러시아가 중심이 되는 안보협력기구(CSTO) 차원의 다자적인 해결책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키르기스스탄과 인접한 지역인 아프가니스탄의 친미 정권인 카르자이 정권의 안정을 통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서 아프간 전선 탈레반 소탕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다자적인 해결책에 묵시적으로 동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작성일 : 20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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